블록체인의 철학, 새로운 인터넷
(주)이노블록 / 최광철 실장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은 어느 것이 먼저일까? 비트코인을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한 것인가, 아니면 블록체인의 활용할 수 있는 당시 최선의 방안이 비트코인이었을까?
사토시는 이렇게 시작했을까?
※ 사토시 : 비트코인의 개발자로 추정되는 인물인 사토시 나카모토. 비트코인 디지털 결제 시스템에서 사용되는 가장 작은 통화단위이다.
정부의 권한은 최소화되어야 하고 개인의 정치적 자유는 극대화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자유주의자가 보기에 현재의 금융시스템을 너무도 독점적이고 억압적었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는 권력을 독점한 이러한 중앙집중식 시스템의 실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자유로운 개인간 금융거래를 하는데 은행이 끼어들어 중재를 하고 거기서 이윤을 추구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중개를 하는 과정에서 거래를 승인하고 관련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된 것이다. 금융기관들은 그 권한을 이용해서 거래 질서와 수수료를 자기들 마음대로 정하고, 개인정보를 이용해서 제3의 사업을 만든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심화되면서 ‘자유로운’ 개인들은 점점 더 금융기관에 종속된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의 민주화가 가능해지면서 사회제도로써의 민주주의도 더 강화되고 개인의 자유도 증진될 것이라고 기대를 했었는데, 정부기관과 거대한 금융기관들이 그 인터넷을 점령함으로써 오히려 자신들의 권력을 더 강화하는 역설적이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인터넷 기술로 자유로운 개인들이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발전되지 않았나? 1) 그래, 인터넷 기술로 금융기관의 중재와 승인을 거치지 않고도, 서로를 알 수도, 알 필요도 없는 개인들끼리 자유롭게 거래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보자. 2) 그 새로운 질서에서는 정보와 권력을 독점하는 집단 대신 사익을 추구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같은 정도의 권력을 누리면서도 거래를 한다. 막대한 개인정보를 보관하는 중개자로서의 금융기관 대신에 3) P2P네트워크를 이용한 개인간의 거래가 정당하고 신뢰할 수 있음을 보장하는 민주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보자. 즉, 암호화 기술에 기반한 전자지불 시스템을 이용하여 자발적인 두 거래자가 제3자인 신용기관 없이도 직접적인 거래를 가능하게 하자.
새로운 질서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중개자, 중앙기관이 없는 거래는 새로운 질서로 기존과는 다른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즉, 일하는 환경과 방식이 달라져야 했다.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기능을 사용하여 송금하고 결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접 상대에게 송금하고 결제하고 그 거래를 검증하고, 나아가 그 결과를 스스로 보관해야 했다.
이 새로운 네트워크에서는 악의적으로 협력하는 노드 그룹보다는 정직한 노드들이 더 많은 컴퓨팅 파워를 총체적으로 제어하는 한 네트워크는 안전하고 거래 또한 안전하게 지켜져야 했다.
가장 먼저, 네트워크 아키텍처가 바뀌어야 했다. 수많은 개인들이 중앙 시스템에 종속되는 client-server 구조를 벗어나 각 개인(노드) 자체가 client이자 server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 불특정 다수의 참여자들간의 거래와 그 검증을 신뢰할 수 있는 합의 기구가 필요했다. 누가 배신할지 모르는 비잔틴 장군의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해 p2p 네트워크에 다수결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합의기술이 필요했다.
그리고 거래와 검증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에 대한 보호와 보장에 대한 기술까지.
이러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사토시가 제시한 주요 기술은 다음과 같다.
- 공개키 암호화 기술
- P2P 분산 네트워크 & Mining
- Blockchain
- 합의 알고리즘
- 해시기술(SHA256)
- 사실 위의 어느 기술도 비트코인이 처음 만든 것은 없다. 이미 개발되어 활용되어 온, 또는 실험적으로 도입은 했지만 각자의 영역에서만 활용되었던 기술이 비트코인에서 종합되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었다.
- 공개키 암호화 기술은 두 거래 당사자간의 거래 내역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거래하는 상대방이 진짜인지를 확인하고, 거래된 관련 기록을 암호화함으로써 익명성을 보장한다.
- P2P 네트워크는 클라이언트-서버 구조를 벗어난, 서로 동등한 노드(즉, 개인)간의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하는 분산 네트워크로써 비트코인 거래를 확증(verification)한다. 이 P2P 네트워크는 중앙은행이나 신용기관처럼 신용을 제공하는 중앙화된 관리기구를 대체한다.
- 블록체인은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거래가 시간순으로 기록된 장부로써 네트워크 상의 모두(=모든 노드)에게 나누어지는 공개된 원장이다. 비트코인 채굴(=거래 검증)에 참여하는 모든 노드들은 모두 같은 블록체인을 갖게 된다.
- 합의 알고리즘은 비트코인 네트워크(=채굴과정)에 참여하는 이기적인 불특정 다수가 자신의 작업(=블록 생성)을 증명하여 다른 노드의 검증을 받는 절차이다. 자기가 생성한 블록이 과반의 노드로부터 검증을 받으면 새로운 블록으로 인정된다. 다수결의 원칙이다.
- 해시기술은 데이터의 일방향 암호화 기술이다. 이전 블록과 거래내역을 암호화함으로써 새 블록의 해시값을 생성한다. 따라서 이 블록에 포함된 거래는 별도의 증명을 하지 않고도 정당한 거래임을 인정받는다.
좁게 얘기하면, 블록체인은 공개된 통합원장이지만, 넓게 보면 암호화기술, 분산네트워크, 합의알고리즘 등을 포함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우리가 말하는 ‘블록체인’은 이 후자의 의미이다.
즉, “P2P 네트워트에서 발생하는 모든 거래(트랜잭션) 정보를 담고 있는 원장(블록체인)을 모든 노드(Peer)가 각자 저장하고 새로운 거래가 일어날 때 마다 자신들이 가진 이 블록체인을 업데이트하고 무결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기술이자 알고리즘이다.”
어쨌든, 이렇게 블록체인은 탄생했다.
2009년 이후로 블록체인은 권력의 분산, 투명성, 보안, 신뢰, 자유로운 참여와 포용의 대명사가 되었다. 인터넷 이후 시대에 개인과 개인 간의 거래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신뢰 프로토콜’로 자리잡게 되었다. “블록체인 기술은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새로운 협력과 합의가 요구되는 새로운 물리적 인프라를 구축”한 것이다. 이제 비로소 그동안 잠재해 있던 기술들이 블록체인이란 이름으로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블록체인은 인터넷 이후의 시대에 과연 어떤 효과를 가져왔을까?
- 무결성의 네트워크화. 합의알고리즘을 통해 거래 참여자들은 대기업이나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도 상대방이 진실되게 행동하리라는 기대에 따라 가치를 직접 교환하게 되었다.
- 권력의 분산과 다수결의 실현. 감독기관이나 통제기구가 없는 P2P 네트워크를 통해 권력을 분산시키고 다수결에 의해 거래를 결정할 수 있다. 이로써 개인은 제도권 중앙기관의 기만과 (수수료 등의)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 인센티브의 가치. 네트워크 참여자들은 참여를 통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에서 더 많은 활동과 기여를 하게 된다. 이로써 ??? ?사람과 사물 모두 적절한 금전적 유인책을 갖고 효과적으로 협력하며,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갖추게 되었다.
- 보안. PKI 기술과 해싱 기술을 통해 네트워크 상에서의 모든 거래는 암호화되고 디지털서명이 되므로 기밀성, 신뢰성, 부인방지의 특성을 가진다. 이로써 안전한 거래가 이루어지고 디지털 경제가 확장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 프라이버시의 강화. 비트코인에서는 다른 사람을 신뢰할 필요가 없고 그들의 정체도 알 필요가 없다. 자신의 정보를 언제, 어떻게, 얼마나 나눌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즉, 익명성을 유지하면서 거래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와 기업에 정보가 독점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 권리의 보전. PKI기술과 타임스탬프는 이중지불을 방지하고 자산(=화폐)의 귀속 주체를 확정하여 주므로 개인의 투명하고 집행 가능한 소유권을 명확하게 보장할 수 있다. 이러한 권리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스마트 계약으로 발전한다.
- 자유로운 참여와 확장. 분산 자본주의, 분산 민주주의의 플랫폼을 유지 확장하기 위한 참여의 장벽을 낮춤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최고의 효율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제 네트워크를 총괄하고 좌지우지하는 중앙권력은 사라지게 된다.
비트코인에 의해 열려진 블록체인의 시대는 곧 네트워크의 확장의 시대였다. 이제는 누구나 네트워크의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중앙 서버가 없는 환경에서 누구나가 정보교류와 거래의 주체가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구현한 퍼블릭 기반의 블록체인은 현실적으로 여러 해결애햐 할 문제점과 과제를 안고 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채굴은 그 자체가 이제 새로운 비즈니스가 되어 엄청난 전기 자원의 낭비를 초래했다. 그리고 이 자원을 다수 소유한 참여자들이 채굴의 기회, 즉 블록을 생성하고 비트코인 보상을 받을 확률이 높아짐으로써 비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가 생겨났다. 물론 블록생성(즉, 거래 검증)에 10분이 필요하다는 점도 블록체인이 화폐로서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이 가져온 인터넷 이후의 세상에 대한 비전은 작지 않다.
인터넷이 네트워크를 수평으로 확장했다면 블록체인은 이 인터넷 기반 위에서 네트워크를 수직으로, 사방팔방으로 확장했다. 인터넷이 정보의 전달과 공유의 확장을 가져왔다면, 블록체인은 정보 생성의 주체와 소유의 확장을 가져왔다. 즉, 인터넷이 정보의 민주화를 가져왔다면, 블록체인은 가치의 민주화를 가져왔다. 불특정한 다수가, 이기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다수의 참여자들이 모여서 사이버 민주주의, 사이버 분권을 실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응용, 무엇을 받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
블록체인은 기본적으로 데이터를 기록하고 운영하는 방식을 정의한다. 미리 정의된 합의구조를 통해 참여자 모두가 데이터의 기록과 관리에 참여한다. 이곳에 비트코인의 숫자(금액)를 기록하든, 재산의 소유권을 기록하든, 계약의 내용을 기록하든, 컴퓨터의 코드를 기록하든 개인의 견해나 투표 또는 각자의 생체정보를 기록하든,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기록하든 자유이다.
단순히 화폐의 발행과 유통에서 벗어나 자산의 소유권을 유통하고 그 신뢰성을 보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중심에 스마트컨트랙트가 있다.
방향은 이렇다. 사실상 모든 자산의 소유권은 등기를 통해 이전(transfer)되고 증명된다. 화폐, 부동산, 토지, 주식, 유가증권, 심지어 보석이나 노트북 등 가격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등기를 통해 소유권을 확정할 수 있다. 점유만으로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결국 세상의 가치는 ‘원장기록’을 통해 이동하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원장’을 제3자 없이 운용할 수 있게 된다면 또는 이러한 ‘원장’을 보다 안전하고 응용가능한 방식으로 운영하게 된다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권력의 분산, 투명성, 보안, 신뢰, 자유로운 참여라는 블록체인의 가치와 철학은 스마트컨트랙트에만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생태계, 새로운 질서, 새로운 시스템을 구현하려는 시도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상용화된 솔루션은 많지 않다.
새로운 응용을 위해서 우리는 블록체인 기술뿐만 아니라, 그 철학과 가치를 이해해야 한다. 적어도 ‘블록체인’이란 기술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려고 한다면 그 기술의 바탕에 깔린 의미와 가능성 정도는 이해해야 한다. 그 이후에는, 그 응용이 퍼블릭 블록체인이든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든, 새로운 통화질서든 새로운 자산의 관리든, 물류든 다양한 형태로 현실화될 수 있겠지만 기술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고 사람들을 현혹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의 실패율은 높기 마련이다. ... 모든 스타트업이 전부 살아남을 수는 없다. 우리는 사토시의 원칙을 따르는 스타트업이 그렇지 않은 스타트업에 비해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고 믿는다.”『블록체인 혁명』
비록 비트코인은 퍼블릭을 기반으로 현실적인 문제점이 있으며, 오늘날 대부분의 블록체인 응용은 프라이빗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철학의 의미가 퇴색할 우려가 높다. 그래서 지금이 블록체인을 오늘날의 모습으로 탄생시킨 철학과 그것이 추구한 가치를 우리는 퍼블릭이 아닌 프라이빗 환경에서 어떻게 계승 발전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창조는 언제나 과거로부터 나오는 것이니까…
참고문헌
- 『옥스퍼드 사전은 ‘사토시’를 뭐라고 정의했나』 - 한국블록체인뉴스, 2019(https://www.hkbnews.com/article/view/4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