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프리카데이터랩 / 김유빈 대표
서론: 왜 지금 데이터 주권을 말해야 하는가
2020년대, 세계는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나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다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유럽연합(EU)의 '디지털 주권' 선언(GAIA-X)은 더 이상 기술만으로 세상을 연결할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술 블록화'는 클라우드와 SaaS 산업의 본질을 뒤흔들고 있다.
원래 클라우드의 가장 큰 매력은 어디서든 서비스를 만들어 전 세계에 뿌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클라우드는 본질적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인프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그 위를 떠다니는 ‘데이터’는 국경이라는 장벽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EU의 GDPR, 미국의 CLOUD Act, 중국의 데이터 안보법 등 각국 정부는 자국 데이터를 보호하고 통제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정보 보호 차원을 넘어, 국가 안보와 산업 보호라는 더 큰 전략의 일환이다.
이러한 현실은 SaaS와 클라우드 기업에 새로운 숙제를 던져준다. 이제 기술력만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각국의 복잡한 법과 정치 지형을 이해하고, 데이터 주권 요구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능력이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게 되었다.
우리 기업들도 질문에 답해야 할 때다.
- 과연 한국은 제대로 된 '디지털 주권' 전략을 갖고 있는가?
- 아마존, 구글 같은 거대 기업들은 이 파고를 어떻게 넘고 있을까?
- 우리 SaaS 기업들은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이 글에서는 이 질문들을 중심으로, 급변하는 글로벌 데이터 주권 환경을 살펴보고 한국 기업이 나아갈 길을 찾아보려 한다.
1. 글로벌 트렌드: 기술은 세계로, 데이터는 국경 안으로
클라우드는 본래 경계를 허물고 데이터를 자유롭게 흐르게 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각국의 정치적, 법적 이해관계는 이 흐름에 강력한 제동을 걸고 있다. 지금 우리는 기술적으로는 하나로 연결되지만, 데이터는 국경 안에 갇히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1-1. 유럽: "우리 데이터는 우리가 지킨다" (GAIA-X, Project Sylva)
EU는 '디지털 주권'을 외치며 미국과 중국의 클라우드 공룡들에게 당당히 맞서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GAIA-X프로젝트다. 여기에는 유럽의 데이터를 유럽 안에서, 믿을 수 있는 방식으로 처리하고 활용하는 클라우드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담겨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유럽 통신사들이 힘을 합쳐 Project Sylva라는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유럽산 오픈소스 기술로 5G와 엣지 클라우드를 통합해, 공공과 민간 클라우드 시장 모두에서 기술 독립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1-2. 미국과 중국의 데이터 패권주의
- 중국:2021년 시행된데이터 안보법은 핵심 데이터를 반드시 중국 내에 저장하도록 못 박았다. 해외로 데이터를 보내려면 정부의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알리바바 클라우드나 화웨이 클라우드 같은 자국 기업들도 해외 데이터센터와 함부로 연결하지 못하고, 철저히 자국 기술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다.

- 미국:2018년 제정된 CLOUD Act는 더 노골적이다. 이는 미국 기업이 운영하는 서버가 전 세계 어디에 있든, 미국 정부가 요구하면 데이터를 제출해야 한다는 법인데, 이 법 때문에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유럽 고객의 데이터는 유럽에서만 관리하겠다"며 'EU 데이터 경계(EU Data Boundary)'라는 특별 조치를 내놓기도 했다.
1-3. 글로벌 클라우드 기업들의 생존 전략 : '주권 클라우드'
이런 흐름에 맞춰 AWS, 구글 같은 글로벌 클라우드 기업(CSP)들은 발 빠르게 전략을 바꾸고 있다. 단순히 서버를 늘리는 것을 넘어, 각국의 규제를 만족시키는 '주권 클라우드(Sovereign Cloud)'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AWS는 각국 정부나 규제 기관의 요구에 맞춘 독립적인 클라우드 리전(Region)을 구축하고 있고, 구글은 현지 파트너나 정부가 클라우드 관리 권한을 일부 가져가는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1-4. 똑똑한 기업의 선택: 틱톡(TIKTOK)의 데이터분산
중국계 기업인 틱톡은 미국과 유럽에서 "개인정보를 중국 정부에 넘길 수 있다"는 거센 압박에 시달렸다. 이에 틱톡은 미국 사용자의 데이터는 미국 오라클 서버에, 유럽 사용자의 데이터는 아일랜드에 짓는 전용 데이터센터에 분산 저장하는 '프로젝트 텍사스'와 '프로젝트 클로버'를 추진했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인 선택이 아니라, 정치적 신뢰를 얻기 위한 전략적인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2. 한국의 현주소: 말뿐인 '디지털 주권'?
한국 역시 '디지털 주권'을 외치고는 있지만, 현실은 구호에만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의 클라우드 정책은 여전히 외국 기술을 막고 국내 기업을 보호하는 '우물 안' 전략에 갇혀있는 것은 아닐까?
2-1. 강화되는 데이터 국외 이전 규제
2020년 개정된 데이터 3법과 후속 시행령은 개인정보를 해외로 보낼 때, 사용자에게 더 명확히 알리고 동의를 받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이제 기업들은 데이터를 어디에, 어떻게 저장하고 처리하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는데, 이는 해외 클라우드를 쓰는 국내 기업에게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2-2. '국산화'에 갇힌 클라우드 정책의 한계
정부는 '공공 클라우드 활성화'를 외치며 국산 클라우드 기업을 밀어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클라우드 보안인증(CSAP)제도다. 이 인증을 통과하기가 워낙 까다롭고 오래 걸려, 사실상 글로벌 기업들의 공공 시장 진입을 막는 장벽 역할을 하고 있다.
그 결과 공공기관은 국산 클라우드를 울며 겨자 먹기로 쓰지만, 정작 다양한 서비스와 기술력이 필요한 민간 기업들은 여전히 AWS나 Azure 같은 해외 클라우드에 크게 의존하는 '이중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기술 경쟁력 확보와는 거리가 멀다.
2-3. 한국형 GAIA-X, 가능할까?
국내 기업들이 '주권 클라우드'를 표방하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EU의 GAIA-X처럼 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데이터 연합이나, 서로 다른 클라우드를 연결하는 표준화된 생태계 설계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기술 개발을 넘어, 산업계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한국형 GAIA-X를 실현하려면 단순히 CSP 기술 고도화를 넘어서, 산업 간 데이터 연계 구조와 상호운용성 확보를 위한 정부-산업 공동 체계가 필요하다.
3. 실전 전략: 우리 SaaS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하나?
글로벌 시장에서 데이터 주권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고객이 있는 국가의 법을 지키지 못하면, 아예 사업을 시작할 수도 없다. 스마트한 기업들은 이미 다음과 같은 전략으로 움직이고 있다.
3-1. 멀티리전(Multi-region): 데이터 분산은 기본
단순히 서비스 안정성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데이터 주권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다. 예를 들어, 한국 고객 데이터는 서울 리전(AWS, 네이버클라우드 등)에, 유럽 고객 데이터는 프랑크푸르트 리전(AWS, Azure 등)에 나눠 저장하는 방식이다. 고객에게 "당신의 데이터는 당신의 국가 법에 따라 안전하게 보관됩니다"라는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3-2. 데이터 처리 계약(DPA)과 서비스 수준 협약(SLA)의 명문화
"우리 회사는 GDPR을 준수합니다"라고 말로만 떠드는 시대는 지났다. 고객과의 계약서에 데이터 처리 위치, 보유 기간, 삭제 방식, 제3자 제공 여부 등을 명확히 문서로 남겨야 한다. 특히 유럽 고객과 거래한다면 표준계약조항(SCC)은 필수다. 이는 법적 분쟁을 피하는 안전장치이자, 우리 서비스가 얼마나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최고의 영업 도구라고 할 수 있다.

3-3. 국가별 규제 대응은 '매뉴얼'로
주요 진출 국가(한국, EU, 미국 등)의 데이터 규제에 맞춰 내부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두는 것은 기본이다.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누가, 어떻게, 어떤 절차에 따라 대응할지 미리 정해두어야 한다. 이는 위기관리 능력이자 고객 신뢰를 얻는 핵심 자산이다.
4. 결론: 클라우드 시대, 데이터의 '국적'이 경쟁력이다
결론은 꽤 명확하다.
클라우드 기술은 국경을 넘지만, 데이터는 그 나라의 법을 따른다.
SaaS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기술력만큼이나 각국의 데이터 규제를 이해하고 준수하는 '컴플라이언스 역량'이 중요하다. 유럽 고객은 GDPR을, 미국 고객은 CLOUD Act를, 아시아 고객은 자국 데이터 보호법을 기준으로 우리 서비스를 평가할 것이다.
이제 기업의 경쟁력은 이 질문에 얼마나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 "고객의 데이터는 어디에 저장되는가?"
- "그 데이터는 어떤 법의 보호를 받는가?"
- "문제가 생기면, 우리 회사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미리 준비된 기업만이, 국경 없는 클라우드 전쟁터에서 '신뢰'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컴플라이언스 설계 없는 글로벌 전략은 이제 무의미하다. 데이터의 '국적'이 바로 당신의 비즈니스 경쟁력이다.
5. 참고문헌 및 자료 출처
5-1. 글로벌 정책 및 규제 관련
1. GAIA-X Project ? https://www.gaia-x.eu
2. Project Sylva by Linux Foundation Europe ? https://lfprojects.org/sylva/
3. China Data Security Law (?据安全法) ? National People’s Congress of China
4. U.S. CLOUD Act ? U.S. Department of Justice, 2018
5. India Data Protection Bill (DPDP Act) ? Ministry of Electronics and IT, India
6. Russia Personal Data Law ? Federal Law No. 152-FZ on Personal Data, 2006
5-2. 클라우드 기업 및 리전 전략
1. AWS Global Infrastructure ? https://aws.amazon.com/about-aws/global-infrastructure/
2. Microsoft Azure Global Regions ? https://azure.microsoft.com/en-us/globalinfrastructure/geographies/
3. Google Cloud Regions ? https://cloud.google.com/about/locations
4. TikTok's US Data Storage Plan with Oracle ? Reuters, “TikTok moves U.S. user data to
Oracle servers”, 2022
5-3. 한국 관련 정책 및 현황
1. 데이터 3법 개정 관련 보도자료 ? 개인정보보호위원회, 2020
2.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 클라우드 보안 가이드라인 ? https://www.kisa.or.kr
3. 네이버클라우드 글로벌 전략 ? 네이버클라우드 공식 블로그, 2023
4. KT Cloud, 국산 CSP 전략 발표자료 ? KT 공식 뉴스룸, 2024
5-4. 계약 및 법적 대응 문서
1. Standard Contractual Clauses (SCCs) ? European Commission
2. Data Processing Agreement (DPA) Sample ? IAPP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Privacy
Profession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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