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문(Executive Summary)
2026년 SaaS 시장의 질문이 바뀌고 있다. "기능을 얼마나 더 넣을 것인가"에서 "성과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중이다. Gartner는 2026년 7월, 지금부터 2030년까지 최대 2,340억 달러 규모의 엔터프라이즈 애플리케이션 지출이 '에이전틱 아비트라지(agentic arbitrage)'에 노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AI 에이전트가 여러 시스템에 걸친 업무를 대신 수행하면서, 사용자가 개별 소프트웨어 화면과 상호작용해야 할 필요가 줄어드는 현상을 가리킨다.
다만 이를 'SaaS의 종말'로 읽으면 대응을 그르치기 쉽다. Gartner도 이를 종말이 아니라 레거시 SaaS 시장의 '변모(metamorphosis)'로 설명한다. 필자는 이 변화에 대한 대응의 축을 'AX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정리한다. 도구를 하나 더 붙이는 일이 아니라, 업무·데이터·에이전트·책임의 네 개 층을 하나의 지휘 체계로 엮는 일이다.
1. 좌석 수에 연동된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SaaS는 여전히 클라우드 지출의 최대 항목이다. 다만 증가의 결이 달라지고 있다. Gartner가 2026년 5월 발표한 호주 시장 전망에서 SaaS는 그해에도 가장 큰 지출 항목이지만, 성장률은 13.8%로 전년보다 낮아지는 것으로 제시됐다. 배경으로는 시장 성숙과 함께 라이선스 최적화, 좌석(seat) 수 증가의 둔화, 애플리케이션 포트폴리오 재점검이 꼽혔다. 2026년 6월 인도 시장 전망에서도 SaaS는 계속 성장하지만 IaaS·PaaS에 비해 완만한 성장세로 제시됐고, 기업들이 사용량을 합리화하는 한편 늘어나는 예산을 인프라·플랫폼 역량에 배분하고 있다는 설명이 붙었다. 요컨대 SaaS 시장이 꺾였다기보다, 돈이 쓰이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고 읽는 편이 정확하다.
이 변화를 밀고 있는 힘이 에이전트다. Gartner는 2025년 8월, 2026년 말까지 엔터프라이즈 애플리케이션의 약 40%가 특정 업무에 특화된 AI 에이전트를 탑재할 것으로 내다봤다. 2025년 시점의 5% 미만에서 크게 뛰는 수치다. 에이전트가 확산될수록 적어도 일부 업무에서는 사람이 개별 애플리케이션 화면을 직접 오가야 할 필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커진다. Gartner는 에이전트가 결과를 직접 만들어내면서 소프트웨어가 점차 '보이지 않는' 형태가 되고, 그 결과 사용자 수 증가와 매출 증가를 연결해 온 고리가 약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라지는 대상이 SaaS 자체가 아니라 '화면과 좌석으로 값을 매기던 방식'이라는 점이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여러 시스템에 걸친 업무를 끝까지 실행해 주고 고객의 맥락과 지식을 축적하는 역량이다.
2. AI 기능을 더한다고 AX가 되지는 않는다
현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오해가 있다. AI 기능을 하나 더 붙이면 AX(AI 전환)가 완성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앞선 발표에서 Gartner가 짚은 대목은 그 반대에 가깝다. 구매자는 새로운 도구나 대시보드를 더 사는 데 관심이 줄었고, AI 기능을 덧붙이는 일이 더 나은 성과가 아니라 더 큰 비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좋은 성과는 조직의 축적된 기억과 고객 맥락을 오래 유지하는 시스템에서 나온다.
필자가 AX 전략을 다루며 첫 질문으로 두는 것이 제로베이스 사고(Zero-Based Thinking)다. "이 업무는 원래 왜 존재하는가?" 기존 프로세스를 전제로 두고 그 위에 AI를 얹으면 비효율까지 함께 자동화되기 쉽다. 필자가 실행 프레임으로 정리해 온 E-R-A-A는 그 순서를 네 단계로 명시한 것이다. 없앨 수 있는 일을 없애고(Eliminate), 남은 일의 목적을 다시 묻고(Rethink), 사람이 더 잘하도록 보강한 뒤(Augment), 마지막에 자동화한다(Automate). 자동화가 첫 단계가 아니라 마지막 단계라는 점이 핵심이다. PoC에서 가능성을 확인하고도 실제 업무 확산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간극을 줄이려면, 기술 적용에 앞서 업무 자체를 다시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SaaS 공급기업에 이 관점을 적용하면 질문이 바뀐다. "우리 제품에 어떤 AI 기능을 넣을까"가 아니라 "고객의 어떤 업무가 우리 제품 없이도 끝나야 정상인가"를 먼저 묻는 것이다. 불편한 질문이지만, 이 검증을 통과한 기능일수록 에이전트 시대에도 값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에이전트가 직접 업무를 실행하는 영역에서는 UI/UX만으로 차별화하기 어려운 상황이 점차 늘어날 수 있다.
3. AX 오케스트레이션: 네 개의 층을 하나로 지휘하기
오케스트레이션은 흔히 기술 용어로 쓰이지만, 필자는 이를 경영의 언어로 쓴다. 오케스트라에서 중요한 것은 악기의 성능만이 아니라 각 파트가 언제 들어오고 언제 빠지는지에 대한 약속이다. AX도 비슷하다. 모델이나 에이전트의 개수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어떤 순서로 일하고, 어디서 사람에게 넘기며, 결과에 누가 서명하느냐다.
첫째, 업무 층이다. 어떤 업무를 에이전트에게 넘길지 정하는 층이다. 중요하게 볼 기준 중 하나는 자동화 가능성뿐 아니라 '잘못됐을 때 되돌릴 수 있는가'이다. 되돌릴 수 있는 업무부터 넘기는 편이 안전하고 결과적으로도 빠르다.
둘째, 데이터 층이다. 에이전트가 여러 시스템을 넘나들려면 데이터가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이때 SaaS 기업의 중요한 자산은 데이터 자체뿐 아니라, 고객의 업무 맥락과 그 데이터가 실제로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한 지식이다. Gartner도 공급기업이 지켜야 할 것은 데이터만이 아니라 고객 고유의 지식이라고 짚은 바 있다.
셋째, 에이전트 층이다. 이 층에서 오케스트레이션은 성능뿐 아니라 원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Gartner는 2026년 3월, 2030년까지 1조 개 파라미터 규모 LLM의 추론 비용이 2025년 대비 90% 이상 낮아질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에이전틱 모델은 일반적인 생성형 AI 챗봇보다 과제당 5~30배 많은 토큰을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토큰 소비가 단가 하락보다 빠르게 늘어나면 전체 추론 비용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 단위가격의 하락이 총비용의 하락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는 더 효율적인 소형·도메인 특화 모델로 보내고, 복잡한 추론이 필요한 업무에만 고성능 모델을 선택적으로 배치하는 라우팅 설계가 중요해진다. Gartner도 다양한 모델 포트폴리오에 걸쳐 워크로드를 조율할 수 있는 플랫폼에 가치가 쌓일 것으로 전망했다. 오케스트레이션이 기술 취향이 아니라 손익과 맞닿아 있는 이유다.
넷째, 책임 층이다. 가장 자주 빠뜨리지만 가장 비싼 층이다. Gartner는 2026년 5월, 자율성 수준과 권한 범위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에이전트에 같은 거버넌스를 일괄 적용하는 방식이 실패를 부를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2027년까지 기업의 40%가 운영 사고 이후에야 드러난 거버넌스 공백 때문에 자율 에이전트의 권한을 낮추거나 폐기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패의 지점은 '에이전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와 '무엇에 접근하도록 허용했는가'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 있다. 능력과 권한은 다른 문제다.
4. 3S: 무엇부터, 어떻게 넓힐 것인가
방향이 정해져도 실행은 다른 문제다. 필자는 3S, 즉 작게 시작하고(Small Start) → 확실하게 성공시키고(Solid Success) → 똑똑하게 확장하는(Smart Scaling) 순서를 권한다.
Small Start 에서는 전사 도입 계획부터 세우기보다, 되돌릴 수 있고 성과를 숫자로 셀 수 있는 업무 하나를 고른다. 문의 응대 1차 분류, 계약 조항 대조, 정산 데이터 검증처럼 사람이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영역이 적합하다. 이 단계의 목표는 성과보다 학습이다.
Solid Success 에서는 세 가지를 확정한다. 성과 지표를 도입 전 기준선과 함께 정의하고(처리 시간이 줄었는지가 아니라 그 시간이 다른 성과로 옮겨갔는지를 본다), 워크플로당 추론 비용을 측정 항목에 넣으며, 사람이 개입하는 지점과 승인 권한을 문서로 남긴다. 추론 비용을 초기에 재두지 않으면 확장 시점에 원가 구조를 통제하기 어렵다.
Smart Scaling 에서 SaaS 공급기업이 마주할 어려운 결정은 가격 모델이다. 좌석 기반 과금은 사용자 수가 늘어야 매출이 느는 구조인데, 에이전트는 반대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 성과 기반이나 실행량 기반 과금으로 옮겨가려면 '무엇을 성과로 셀 것인가'를 고객과 합의해야 하고, 그 합의를 감당하려면 앞서 말한 원가 구조가 먼저 잡혀 있어야 한다. 도입기업의 원칙도 같다. 지금 쓰는 SaaS 목록을 놓고 "이 서비스가 없어도 이 업무가 끝나는가"를 한 줄씩 확인하는 작업이 출발점이다. Gartner가 말한 라이선스 최적화와 포트폴리오 재점검은 결국 이 질문의 다른 표현이다.
5. 국내 제도 환경: 지원과 규율이 함께 움직인다
국내 환경도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은 2026년 3월 「2026년 SaaS 개발·사업화 지원 사업」을 공고하면서, 차세대 SaaS 생태계 조성의 축으로 'AI-Native SaaS' 개발과 글로벌 진출 지원을 명시했다. AI를 얹은 SaaS가 아니라 AI를 전제로 설계된 SaaS를 정책적으로 겨냥한 것이다.
규율의 축도 함께 움직였다.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과 시행령이 2026년 1월 22일 시행되면서, 다른 사업자가 제공한 AI를 이용해 인공지능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도 '인공지능이용사업자'로 포괄됐다. 다만 실제 의무의 내용과 범위는 생성형 인공지능 또는 고영향 인공지능 해당 여부, 제공하는 제품·서비스의 성격 등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AI 기능이나 에이전트를 SaaS에 결합하는 기업이라면, 모델의 개발 주체만 볼 것이 아니라 자사의 법적 지위와 서비스 유형에 따라 적용되는 투명성·안전성 관련 요건을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공공 시장을 겨냥한다면 2026년 4월 발표된 클라우드 보안인증(CSAP) 체계 개편도 함께 봐야 한다. 과기정통부와 국가정보원은 기존 이중 검증 절차를 국정원 중심 단일 체계로 개편하고 민간 클라우드의 범용 영역을 ISMS로 통합하되, 약 1년의 유예를 거쳐 2027년 하반기에 새 제도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필자의 관점에서는, 인증을 '취득하는' 문제에서 서비스의 보안 수준을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입증하는' 문제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원도, 규율도, 시장도 결국 '설명할 수 있는 실행'을 요구하는 셈이다.
6. 맺으며: 지휘 체계가 없는 오케스트라
좋은 오케스트라의 조건은 단원 개개인의 기량만이 아니다. 언제 들어오고 언제 멈출지에 대한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을 조율하는 지휘자가 있어야 음악이 된다. 많은 기업의 AX가 어려운 이유도 비슷하다. 도구는 충분히 좋아졌는데 지휘 체계가 아직 없다. 에이전트가 업무를 대신 수행하는 시대에 SaaS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기능을 보여주는가'에서 '얼마나 확실하게 결과를 만들어내고 그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가'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 설명의 마지막 문장에는 여전히 사람의 이름이 들어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똑똑한 도구 하나가 아니라, 그 도구들을 어떤 순서로 일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우리 조직의 악보다.
※ 본고의 내용은 필자 개인의 견해이며, 소속 기관(KT)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